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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리샤] 성장통/김애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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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321회 작성일 2022-02-26 23:45: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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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김애리샤

1
 소사동 언덕길 초록색 철재대문 앞에서 사촌들은 언
제나 은하수를 물고 웃었다 나는 연탄재를 뿌리며 별보
다 빛나는 서뻘건 십자가들을 바라보았다 끝을 흐리며
번쩍이는 십자가의 심장을 안고 천국의 모양으로 접히
고 싶었다 여호수아가 눈웃음을 흘릴 때마다 팔딱이는
심장으로 몰려드는 핏덩어리들, 그것들은 언제나 온유
한 말씀으로 나를 안았다 밤공기는 은밀한 발소리를 내
며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옥상들을 밟고 건너갔다 큰엄마
의 주사가 새벽 세 시를 넘길 때마다 나는 마라의 죽음
Ⅱ*를 똑같이 그리는 상상을 했다 열어 놓은 창턱을 밟
고 방바닥까지 십자가가 들어와 누웠다 기도는 습관적
인 회개였다

2
 다이얼식 누런 전화기는 자주 울렸다
 나의라임오렌지나무 나의라임오렌지나무
나는 일부러 천천히 그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전화벨 소리는 나에게 밍기뉴였다

3
 사촌들의 선물은 투명하게 빛나는 크리스털, 나는 유
리 조각들을 질겅질겅 씹으며 교회로 향했다 댕댕댕 새
벽 종소리 따라 바닥으로 번지는 핏자국들은 나의 체증
을 식혀 주는 기도였다 내가 건너는 바다는 왜 늘 누런색
이었을까 키가 큰 괘종시계엔 시침이 없었고 바로 옆 이
부자리엔 광목 침대보가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부스럭
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는 닿을 수 없는 동화 속 과자의 집
냄새를 풍겼다 나는 전철 소리 따라 컬커덩거리며 다리
를 절었다

4
 주기도문을 되새김질할 때마다 귓속으로 걸려드는
어정쩡한 바람들 때문에 중이염은 마른 이끼처럼 번졌
다 항생제는 그러나 어설픈 내성만 키웠다 사촌들이 탐
스럽게 익어 갈 무렵 나는 곪아 터졌다 굴다리 아래 모여
나의 추모예베를 드리고 있던 사촌들은 예배 시간 내내
툴라의 표정으로 울타리를 쳤다 방바닥까지 들어와 누
웠던 십자가가 하늘로 올라가 빛나며 나를 인도하던 밤
이었다


*뭉크는 두 번째 연인이었던 툴라와 헤어진 후 정신적으로 피폐해
진 자신의 모습을 코르데이에게 살해당한 마라에 빗대어 그렸다. 아
무런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 툴라에게 자신이 정신적으로 살해당했다
는 심경을 잘 반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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