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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추] 조개 까는 여자/정낙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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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8회 작성일 2025-04-12 19:42: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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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까는 여자(女子)/정낙추

삼십여 년을
태안시장 한 귀퉁이 눌러 앉아
조개 까는 女子
갯물에 퉁퉁 불은 낙지 대가리 손가락으로
안 보고도 척척 잘도 깐다
조그만 조개 칼 한 바퀴 돌리면
깜짝 놀란 조갯살 바르르 떨고
나비 같은 껍데기는 소복이 쌓인다

조개 까듯 이놈의 세상 홀랑 까서
알맹이 껍데기 가려 놓으면 좀 좋겠냐고
까도 까도 고단한 삶을 탓하지만
조개 칼 하나로 자식들 키우고 공부 시켜
아무 걱정 없는 줄 시장 사람들 다 안다

처녀 적에 내 조개가 일찌감치 눈 뜬 걸 눈치 채고
그 인간이 살살 꼬드겨서 얼른 팔았지
그랬더니 평생 지지리 속만 썩인 덕에
내 궁둥이가 이렇게 앉은 못 박혔어
그저 女子는 조개를 잘 팔아야지
잘못 팔면 요 모양 요 꼴 난다고 연신 떠드는 입
비리기가 안흥 항구 앞바다요
걸기가 풀 두엄 더미다

입이 근질거려 하루도 집에서 못 쉬는
조개를 닮은 女子
서방 노릇 제대로 못하는 웬수니 악수니 하면서도
웬수 때맞춰 점심밥 차려 주려고
조개 칼 놓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
들물처럼 빠르다

​- 정낙추,『그 남자의 손』(도서출판 애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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