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 허상진/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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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진/전성호
춘삼월 아직 촉촉한데
바람 한 무더기 쓸고 간 웅상병원 뒤뜰
포곡새 한 마리 날아간다
대운산 골짜기를 내려서는 바람
네 집 창밖 여윈 소리 따라
세상 너머로 간다
움 솟는 연초록 눈부신 산야
향불 따윈 부질없는데
미친 듯 봄 햇살 떠도는 회야강
오리소 버들강아지들
젖은 입술을 비벼대는데
정 깊은 서창 땅 울지 않는 새들처럼
꽉 묶인 하늘
아직 끝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대책 없이 앞뒤 산만 완강하구나
상진아! 느닷없이, 쉰둘에
어디로 떠나느냐
우리는 몸에 감았던 정도 주먹다짐도
다하지도 못했는데
너 불편한 몸 끌고 어딜 가느냐
산 것들은 왜 언제나 이리도 염치없는지
왜 이리도 부끄러운지
상진아, 그놈의 꼽추가 뭔 원수길래
한없이 너는 울고
우리는 허기진 배에 칡뿌리를 씹었느니
입가 꺼멓도록 웃었다
지기 싫어했던, 네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니가 살던 아파트 창을 올려다봐도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구나
잘 가던 흙다방도 술집도 변해
캄캄한 불가마뿐이구나
사소한 웃음 한 번으로 우리를 간단하게
묶고 풀던 친구야 길에 박힌
돌부리같이 서창 땅에서만 살다 간 상진아
서창슈퍼 옆 옛집으로 돌아오거라
흘러가다 가다 지치면
이곳 연호 마을 작달비로 다시 쏟아지거라
낮은 구름으로 찾아와
집 앞 개난초라도 적셔주거라
돌아와 내가 잠들었거든 잠든 내 코를 내질러 네가 온 것을
알려주거라.
-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실천문학사, 2015)
춘삼월 아직 촉촉한데
바람 한 무더기 쓸고 간 웅상병원 뒤뜰
포곡새 한 마리 날아간다
대운산 골짜기를 내려서는 바람
네 집 창밖 여윈 소리 따라
세상 너머로 간다
움 솟는 연초록 눈부신 산야
향불 따윈 부질없는데
미친 듯 봄 햇살 떠도는 회야강
오리소 버들강아지들
젖은 입술을 비벼대는데
정 깊은 서창 땅 울지 않는 새들처럼
꽉 묶인 하늘
아직 끝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대책 없이 앞뒤 산만 완강하구나
상진아! 느닷없이, 쉰둘에
어디로 떠나느냐
우리는 몸에 감았던 정도 주먹다짐도
다하지도 못했는데
너 불편한 몸 끌고 어딜 가느냐
산 것들은 왜 언제나 이리도 염치없는지
왜 이리도 부끄러운지
상진아, 그놈의 꼽추가 뭔 원수길래
한없이 너는 울고
우리는 허기진 배에 칡뿌리를 씹었느니
입가 꺼멓도록 웃었다
지기 싫어했던, 네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니가 살던 아파트 창을 올려다봐도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구나
잘 가던 흙다방도 술집도 변해
캄캄한 불가마뿐이구나
사소한 웃음 한 번으로 우리를 간단하게
묶고 풀던 친구야 길에 박힌
돌부리같이 서창 땅에서만 살다 간 상진아
서창슈퍼 옆 옛집으로 돌아오거라
흘러가다 가다 지치면
이곳 연호 마을 작달비로 다시 쏟아지거라
낮은 구름으로 찾아와
집 앞 개난초라도 적셔주거라
돌아와 내가 잠들었거든 잠든 내 코를 내질러 네가 온 것을
알려주거라.
- 『먼 곳으로부터 먼 곳까지』(실천문학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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