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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무등을 보며/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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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28회 작성일 2025-02-23 13:14: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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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無等)을 보며/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맷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 ≪현대 공론≫(195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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