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공의 손/맹문재 > 마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66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7,913
  • H
  • HOME

 

[맹문재] 수선공의 손/맹문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0회 작성일 2025-04-12 19:47:23 댓글 0

본문

수선공의 손/맹문재

횡단보도는 건너편에 있는 우리 마을 구둣방
수선공은 길과 구석에 쌓인 쓰레기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구두를 받자마자
오랜 병마에서 살아난 사람처럼
이내 이리저리 뒤집으며 실을 뽑고
찬찬히 가위질을 해댔다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다는 듯
망치로 톡톡 두들기고 볼을 감싸기도 했다
나의 구두는 어느새
수선공의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끄무레한 세밑 하늘이 어둡지 않았고
라디오를 타는 외환 위기 뉴스가 불안하지 않았고
수없이 다가오는 겨울바람도 시리지 않았다
잘 가라는 듯
수선공은 한번 더 구두를 매만지고 내게 건넸다
감쪽같이 변신한 의치(義齒)와 다르게
가운 자국을 당당히 가진 구두
수선공의 손은 어느새 구둣방의 문틈으로
먼 길을 내다보고 있었다

- ​『책이 무거운 이유』(창비, 20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