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운주사 항아리탑/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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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항아리탑/도종환
몸 속에 진신사리를 모시지도 못했어요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장인의 솜씨로 다듬은
균형 잡힌 아름다움도 제겐 없어요
그저 항아리 모양의 돌 몇 개
얹어놓았을 뿐이에요 그러나
부처님은 잘 만들어진 화강암의 삼층
탑신 안에만 계시지 않고
쌀독 속에도 있고
물항아리 안에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땀 한 방울로 쌀 한 톨 키우는 다랭이논에도
있어야 하고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빈 쌀독 속에
우리 목숨보다 먼저 와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참으로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찰랑거리며
물항아리 속에 앉아 함께 젖어 있거나
된장독 맨 밑에서 깊고 오랜 맛으로
푹푹 썩어가며 섞여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산 계곡까지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산그늘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의 논 옆에
일하고 허리를 눕히는 바로 그 곁에
탑도 부처님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요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모습 친근한 표정으로
-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2002)
몸 속에 진신사리를 모시지도 못했어요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장인의 솜씨로 다듬은
균형 잡힌 아름다움도 제겐 없어요
그저 항아리 모양의 돌 몇 개
얹어놓았을 뿐이에요 그러나
부처님은 잘 만들어진 화강암의 삼층
탑신 안에만 계시지 않고
쌀독 속에도 있고
물항아리 안에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땀 한 방울로 쌀 한 톨 키우는 다랭이논에도
있어야 하고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빈 쌀독 속에
우리 목숨보다 먼저 와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요
참으로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찰랑거리며
물항아리 속에 앉아 함께 젖어 있거나
된장독 맨 밑에서 깊고 오랜 맛으로
푹푹 썩어가며 섞여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산 계곡까지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산그늘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의 논 옆에
일하고 허리를 눕히는 바로 그 곁에
탑도 부처님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요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모습 친근한 표정으로
-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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