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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향림] 파도여관/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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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6회 작성일 2025-04-14 15:30: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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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여관/노향림

뒷담이 다 허물어진 파도여관
마당에 쌓아둔 헌 벽돌짝 깨지는
큰 웃음소리 옆방에서 들려오고
섰다판에 화투장 뒤집는지
흑싸리 열끗에 비광이야, 낄낄대는 소리
찢긴 비닐 창문 밖에는 풀려 내린 하늘이
짙푸른 청색 커튼을 쳐주었다.

단잠에 빠진 사이 한 굽이 바다가
마당에 알몸으로 들어왔다 나간다.
머리가 하얗게 센 파도가 방금 들어왔다 나간 뒤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누가 훔쳐보았나.
초벌구이 반죽 같은 뻘밭에 빠져 허우적이다
가위 눌린 하늘을 누르고 벼락처럼 몰린
달랑게 칠게 떼가
갈라지는 바다의
가랑이 사이를 힘차게 기어 다니다 돌아온다.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다 저희끼리 부딪쳐서 고꾸라진
놈들을 데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이
개펄은 바닷물에 잠긴다.

함석지붕도 삭고 한쪽 어깨마저 주저앉은
파도여관, 빈 방에 힘 빠진 술병들만 나뒹굴고
멀리 길바닥에 낯선 얼굴로 가마우지
혼자 나와 놀고 있다.
선잠 속에 잠깐 들여다본 쪽빛 파도여관.

 -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실천문학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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