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그의 뒷모습/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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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뒷모습/나희덕
그 도시를 떠나기 전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산 중고의자를 버리러 갔다
의자 하나 버리러 거기까지 가야 한다니,
정말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나라라고 투덜거리며
쓰레기처리장을 물어 물어 찾아갔다
아랫배가 터진 의자는 톱밥을 쿨럭쿨럭 쏟아냈다
직전에 버려진 의자는 다리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냉장고는 냉장고끼리, 에어컨은 에어컨끼리,
세탁기는 세탁기끼리, 가전제품들은
허공에 플러그를 꽂은 채 폐기될 순서를 기다렸다
죽은 시각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시계들은
손가락으로 각기 다른 시각을 가리켰다
썩을 수 없는 것들은 대체로 완고한 얼굴을 가졌다
저편에는 썩어가는 것들의 거대한 묘지,
산처럼 쌓인 쓰레기 위로
트럭은 색색의 비닐봉지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신선한 쓰레기 주위로 갈매기들과 까마귀들이 몰려들었다
썩은 고기를 찾아 비닐봉지를 쪼아대는 부리들,
격렬하게 부딪치는 흰 날개와 검은 날개,
끼룩끼룩, 까악까악, 울음소리도 공중에서 뒤엉켜 나뒹굴었다
진동하는 악취에 차들은 쓰레기를 부려 놓자마자 달아났다
그곳에서는 모든 길이 일방통행이었다
해가 뉘엿 넘어가는데
의자 하나 버리러 갔다가 보고 말았다
그의 뒷모습을
흰 날개와 검은 날개로 가득 찬 묵시록의 하늘을
-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그 도시를 떠나기 전
벼룩시장에서 헐값에 산 중고의자를 버리러 갔다
의자 하나 버리러 거기까지 가야 한다니,
정말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나라라고 투덜거리며
쓰레기처리장을 물어 물어 찾아갔다
아랫배가 터진 의자는 톱밥을 쿨럭쿨럭 쏟아냈다
직전에 버려진 의자는 다리 한쪽이 부러져 있었다
냉장고는 냉장고끼리, 에어컨은 에어컨끼리,
세탁기는 세탁기끼리, 가전제품들은
허공에 플러그를 꽂은 채 폐기될 순서를 기다렸다
죽은 시각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시계들은
손가락으로 각기 다른 시각을 가리켰다
썩을 수 없는 것들은 대체로 완고한 얼굴을 가졌다
저편에는 썩어가는 것들의 거대한 묘지,
산처럼 쌓인 쓰레기 위로
트럭은 색색의 비닐봉지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신선한 쓰레기 주위로 갈매기들과 까마귀들이 몰려들었다
썩은 고기를 찾아 비닐봉지를 쪼아대는 부리들,
격렬하게 부딪치는 흰 날개와 검은 날개,
끼룩끼룩, 까악까악, 울음소리도 공중에서 뒤엉켜 나뒹굴었다
진동하는 악취에 차들은 쓰레기를 부려 놓자마자 달아났다
그곳에서는 모든 길이 일방통행이었다
해가 뉘엿 넘어가는데
의자 하나 버리러 갔다가 보고 말았다
그의 뒷모습을
흰 날개와 검은 날개로 가득 찬 묵시록의 하늘을
-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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