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황동규 > 하

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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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장하게 환한 가을날 화왕산 억새들은
환한 중에도 환한 소리로 서걱대고 있으리.
온몸으로 서걱대다 저도 모르게
속까지 다 꺼내놓고
다 같이 귀 가늘게 멀어 서걱대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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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낮달이 계속 뒤따라오고
마른 개울 언저리에
허투루 핀 꽃 없고
새소리 하나도 묻어 있지 않은 바람 소리
누군가 억새 속에서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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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다 처음 만나는 집에 들러
물 한 잔 청해 달게 마시고 한 번 달게 웃고
금세 바투 몰려드는 무적(霧笛) 같은 어스름 속
무서리 깔리는 산길을
마른 바위에 물 구르듯 내려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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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