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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모래내 종점/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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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6회 작성일 2025-04-20 19:55:0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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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내 종점/천양희

늦가을 비 내려 하루가 짧게 저문다.
너무 춥네, 하듯이 가로수들이 헐벗었다
모래내 버스 종점. 막차가 돌아온다
밤하늘이 어둡고 깊다. 바람이 출렁,
뼛속까지 밀려온다. 막일 끝낸 사람들 몇,
막차에서 내린다, 마른 가지 끝이 흔들린다
그에게 세상은 가지 끝 오르기다. 미끄러지기다
세상은 너무 미끄럽다니까
냉기도 뒤집으면 훈기가 된다고?
역 앞 마당이 썰렁하다. 늙은 취객 하나
거위처럼 뒤뚱거리며 사라진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뭐, 새라고? 영화? 좋아하시네 하면서
흐린 불빛에도 으스러지는 건
지난 시간의 반짝이는 모래들, 모래톱들
누가 손을 넣어 그의 가슴을 뜯어내려는 건가
세상에는 물보다 더 맑은 눈물이 있다는 걸
수색水色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제 모래 속을 제가 들추어보려는 듯
거기, 모래톱을 안고 사는 모래천변 사람들
지상의 그물 속에 그, 물 속에 걸리는 것은 모래뿐이지
물같이 흐르고 싶은 밤, 모래 위에 앉아
밤새도록 꾸벅거리는 모래내를, 그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버스 종점 그 끝에 서서.

- 『단추를 채우면서』(시인생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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