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선] 봉숭아/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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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김광선
결국은 문을 닫았다, 맛만 있으면
손님이 몰려올 거라 믿었던 칠 년여 영업
이미 기울은 봄날
새 학기에 얻어 온 봉숭아 씨를 아이는 깊이 묻었다
음식 쓰레기 간기에 절어
기미 낀 여인처럼 거무죽죽 수채 근처 자투리 땅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제 호기심을 확인하려는 듯 꼭꼭 누른다
너무 누르지 마라, 씨도 숨을 쉬어야 한단다
깊이 묻으면 새싹이 트는 날도
그만큼 멀단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광우병, 지구 반대편
이 나라 쇠고기 반 이상을 조달한다는
미국에서 터진, 날이면 날마다
비척비척 쓰러지는 소를 화면으로 내보내다
그것도 지치면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을 하는 소들의 무덤을 아이가 볼까
우리들은 오줌 누듯 묵묵히 뒷마당
간혹 지나가는 개미를 발로 으깨며 물을 뿌렸다
우리 이제 장사 안 해요? 펄펄 뛰는 아이들
신난 아이들
봉숭아 꽃잎들이 환하게 핀다, 더는 돌보지 못하고
뭉게뭉게 떠나갈 아이들이
눈길 떼지 못하고 애써 피운 꽃잎
만지작거리다 홑잎으로 질까 두렵다
내년 새봄에 이 자리
더욱더 많은 봉숭아가 필 거야, 그러니가 이제 가자
뒷좌석에 올라탄 아이들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붉은 도마』(실천문학사, 2012)
결국은 문을 닫았다, 맛만 있으면
손님이 몰려올 거라 믿었던 칠 년여 영업
이미 기울은 봄날
새 학기에 얻어 온 봉숭아 씨를 아이는 깊이 묻었다
음식 쓰레기 간기에 절어
기미 낀 여인처럼 거무죽죽 수채 근처 자투리 땅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제 호기심을 확인하려는 듯 꼭꼭 누른다
너무 누르지 마라, 씨도 숨을 쉬어야 한단다
깊이 묻으면 새싹이 트는 날도
그만큼 멀단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광우병, 지구 반대편
이 나라 쇠고기 반 이상을 조달한다는
미국에서 터진, 날이면 날마다
비척비척 쓰러지는 소를 화면으로 내보내다
그것도 지치면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을 하는 소들의 무덤을 아이가 볼까
우리들은 오줌 누듯 묵묵히 뒷마당
간혹 지나가는 개미를 발로 으깨며 물을 뿌렸다
우리 이제 장사 안 해요? 펄펄 뛰는 아이들
신난 아이들
봉숭아 꽃잎들이 환하게 핀다, 더는 돌보지 못하고
뭉게뭉게 떠나갈 아이들이
눈길 떼지 못하고 애써 피운 꽃잎
만지작거리다 홑잎으로 질까 두렵다
내년 새봄에 이 자리
더욱더 많은 봉숭아가 필 거야, 그러니가 이제 가자
뒷좌석에 올라탄 아이들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붉은 도마』(실천문학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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