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숲길에서/고재종 ​ > ㄱ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49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7,896
  • H
  • HOME

 

[고재종] 백련사 동백숲길에서/고재종 ​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29회 작성일 2025-04-12 13:23:03 댓글 0

본문

백련사 동백숲길에서/고재종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즐거움과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無明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보긴 걸어볼 참인가.

-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시와시학사, 20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