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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안] 나를 닮은 너는 나의 바램이었나/이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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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47회 작성일 2022-02-26 23:28: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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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너는 나의 바램이었나/이슬안


1.
오랫동안 그릇을 사 모았다
엄마의 취향대로 내 혼수는 채워졌다 유일하게 골랐던 커피 잔, 화려한 금박을 권했지만 보라색 여린 꽃이 박힌 하얀 잔을 골랐다
보라색 꽃들은 곧잘 벼랑 위에서 흔들렸다 절벽과 절벽 사이로 검은 강이 세차게 흘러갔다 의식을 행하듯 매일 보랏빛 꽃을 움켜쥐었지만 한번 돌아누운 등은 점점 계곡 아래로 추락해 갔다
커피잔과 머그와 접시들이 돌아누운 절벽에 관한 기도처럼 경건하게 쌓여갔다 포트메리온, 로얄알버트, 레녹스, 쯔비벨무스터. 덴비는 내 경전의 목차였다
더이상 들여놓을 자리가 없이 집안은 그릇들로 채워져 갔지만 내 마음 속 보랏빛 꽃은 피어나지 않았다 간신히 여미고 있는 몸의 실밥 사이로 절규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장식장에는 꽃과 엽록이 넘쳐났다 나비와 새와 갖가지 문양들이 춤을 추고  붉은 열매들이 익어갔다. 그릇들은 금박의 순간을 담고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그 무엇도 담아주지 않았다
오래전의 보랏빛 꽃무늬 커피 잔을 겨우 찾아냈다 잃어버린 내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커피 물 끓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그릇을 사 모았던 일이 그릇된 일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릇에게 내 숨통을 조인 후였다

2.
작은 찻잔 하나 곁에 두기 시작했다
흰 빛인 듯 오묘한 표정 안에 담긴 고요와 정갈함이
단문처럼 배어있는
하나 둘, 나를 꺼내어 내다 버려야 하는 일이 꽉 찬 진열장 속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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