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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201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그녀가 뛰기 시작했다/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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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5회 작성일 2025-04-12 00:13:34 댓글 0

본문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임호

출근길,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은행알들이 비좁은 그녀의 구두에 밟혀 터진다
"헬로 에브리바디~ 근데 내가 좀 바쁘거든요~!"
우리의 그녀는 바쁘다
우리의 그녀는 뛰지 않을 수 없다
어깨에 당겨 맨 앙증맞은 가방엔
있어야 할 약간의 센스와
없어도 될 약간의 의심을 담고
우리의 그녀는 뛴다
한꺼번에 많이 벌릴 수 없어 조금씩 뛴다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을 만큼씩 뛴다
먹이를 쪼는 비둘기처럼 뒤뚱거리며 뛴다
그녀는 뛴다
늦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모자라지 않기 위해, 같아지기 위해?
그녀의 치마는 그녀가 선택할 수 없는 바람에 흩날리고
그녀의 가슴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안도로 출렁이고
그녀의 쇄골은 떡볶이처럼 흐느적거리고
그녀의 뺨은 뿌듯함으로 달아오른다
우리는 이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그녀의 페이트런
그녀의 협잡꾼, 그녀의 앞잡이
상처의 방향이 다를 뿐
우리는 한 이불에서 뛰기 시작했다
누가 그녀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명랑한 그녀의 부주의를
누가 그녀를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자꾸만 예뻐지는 그녀의 미래를
누가 그녀를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그녀만의 달콤한 모멸을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피앙세
도려낸 시간에서 흐르는 육즙을 받아 마시며
저 푸른 초원 위에 녹초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달리다가
돌아와 그녀가 사라진 엘리베이터앞에 앉아
포크를 움켜쥐고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는
우리는, 우리는 모두
그녀의 그녀

- 대전일보 2019 신춘문예 당선작 기사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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