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202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그러면 그러라고 할지/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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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러라고 할지/강영선
시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에서
안부 전화가 왔다
노인정에 가기는 어정쩡한 젊은 노인에게 방을
내주어도 되냐고 동네 이장이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마당의 빈터는 앞집에서 농기구를 갖다 놓아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샘가 감나무에 감이 무겁게 열리자 옆집에서
곶감을 좀 보내 줄 테니 감을 따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빈 닭장에 닭을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전기도 수도도 끊어 놓은 그 집에 물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 된 빈집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 온다
떼 내지 않은 나무 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 있어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강영선
- 1969 년 경북 문경 출생
- 문경고등학교 졸업
-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시 창작교실
♣ 심사평
담백한 시어지만 행간에 깊은 사유 담아
<농민신문> 신춘문예는 다른 일간지와는 변별되는 특성이 있는 듯하다. 전통적 서정이나 생활의 실감이 전반적으로 강한 편이고, 실험적인 경향의 작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 풍경보다는 농촌 현실에 대한 묘사나 자연과의 교감이 두드러진 편이다. 그야말로 대지에 뿌리내린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330명이 응모한 1943편의 투고작 가운데 다음 네명의 시를 두고 마지막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결이 곱고 섬세한 언어로 자연의 상징성을 잘 살린 <꽃누르미 -그들의 압화> 외 4편, 활달한 상상력과 구수한 입담으로 농본적 세계를 재미있게 표현한 <주걱을 읽어주시겠습니까> 외 6편, 슬픔과 상실의 풍경조차 감정의 절제와 발랄한 언어감각으로 새롭게 조형해낸 <어떤 필기체 > 외 4 편 , 담백하고 간결한 시어와 리듬으로 생활의 단상을 묵직하게 펼쳐낸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외 4편 등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당선작으로 뽑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는 제목에서부터 묻어나는 어떤 무심함이 오히려 감정과 의미 과잉의 시대에서 신선하고 돋보이는 면이 있었다. 투고한 작품 전체가 얼핏 무심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행간에 많은 이야기와 깊은 사유를 거느리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이 많은 이의 터전이 돼주고 서로 연결해주는 따뜻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 시는 생활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선과 타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시인의 미덕이고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장석남,나희덕)
시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에서
안부 전화가 왔다
노인정에 가기는 어정쩡한 젊은 노인에게 방을
내주어도 되냐고 동네 이장이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마당의 빈터는 앞집에서 농기구를 갖다 놓아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샘가 감나무에 감이 무겁게 열리자 옆집에서
곶감을 좀 보내 줄 테니 감을 따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빈 닭장에 닭을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전기도 수도도 끊어 놓은 그 집에 물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 된 빈집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 온다
떼 내지 않은 나무 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 있어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강영선
- 1969 년 경북 문경 출생
- 문경고등학교 졸업
-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시 창작교실
♣ 심사평
담백한 시어지만 행간에 깊은 사유 담아
<농민신문> 신춘문예는 다른 일간지와는 변별되는 특성이 있는 듯하다. 전통적 서정이나 생활의 실감이 전반적으로 강한 편이고, 실험적인 경향의 작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 풍경보다는 농촌 현실에 대한 묘사나 자연과의 교감이 두드러진 편이다. 그야말로 대지에 뿌리내린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330명이 응모한 1943편의 투고작 가운데 다음 네명의 시를 두고 마지막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결이 곱고 섬세한 언어로 자연의 상징성을 잘 살린 <꽃누르미 -그들의 압화> 외 4편, 활달한 상상력과 구수한 입담으로 농본적 세계를 재미있게 표현한 <주걱을 읽어주시겠습니까> 외 6편, 슬픔과 상실의 풍경조차 감정의 절제와 발랄한 언어감각으로 새롭게 조형해낸 <어떤 필기체 > 외 4 편 , 담백하고 간결한 시어와 리듬으로 생활의 단상을 묵직하게 펼쳐낸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외 4편 등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당선작으로 뽑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는 제목에서부터 묻어나는 어떤 무심함이 오히려 감정과 의미 과잉의 시대에서 신선하고 돋보이는 면이 있었다. 투고한 작품 전체가 얼핏 무심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행간에 많은 이야기와 깊은 사유를 거느리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이 많은 이의 터전이 돼주고 서로 연결해주는 따뜻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 시는 생활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선과 타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시인의 미덕이고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장석남,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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