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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 [2022년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스케치 –기린의 생태계/유휘량 영양 교환/추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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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2회 작성일 2025-04-11 22:57:20 댓글 0

본문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유휘량

우린 목이긴 걸
 
기린이라 불러
 
하필 넌 목이 길구나.
 
누가 널 그리고 있는 걸 아니?
 
그림자를 졸여 만든 잉크로
 
괜찮아.
너는
 
그리는 동시에
사라지는 감각이 좋았다.
 
따듯한 색은 대체로 몸에 좋지 않았던 그때
 
핏줄엔 면역이 없어서, 핏줄에 묶인 몸이 싫다고
목에 핏줄 세우며
 
새가 새를 잡아먹는 건 이상하다. 완벽한 새장을 만들기 위하여 가시밭에 두 손을 넣어두고 돌아왔다. 그 두 손은 그림자놀이를 통해 새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린이 새를 입에 물고 불타는 머리를 흔드는 걸 보면 이상하다. 나무에 열리는 아가미는 싫어하면서 하루에 새 하나씩 꼬박꼬박 먹는 건 이상하다.
 
몸을 벗고 남겨진 자신을 봐.
 
복도 같이 긴 목에서 빠져나온
 

 
새를 먹는 게 아니었구나. 기린은, 몸집에서 그냥 목이 길뿐이었다. 그래도 입에 새를 넣고 빼는 것은 이상하다. 새가 거기에 거주하는 것도 이상하다. 기린들은 둥글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뭉쳐 있구나. 자기들끼리 새들을 주고받으면서 …. 기린은 왜 목이 길지. 새들은 기린을 빠져나가면서 어떤 그림자를 버리고 가지. 기린은 소리 내지 않고 새를 보여준다. 새가 물고 온 아가미는 받아준다. 기린 속의 웅덩이가 너무 깊어서 목이 긴 걸까. 있지.
 
나, 사실 네가 쟤를 잡아먹는 걸 봤어.
 
유독 목이 긴 새였잖아. 걔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어. 거기서 죽으면 누가 묻어줘? 가끔 새가 새를 물고 기린 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어. 어쨌든 걔는 고독사는 아니길 바라지만. 기린 속의 새들은 둥지를 뒤집어 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는데, 속이 뒤집어 지는 느낌은 어떤건지. 나는 몰라. 나는 목이 짧고 기린은 아닌데,
 
가끔,
가끔 말이야.
 
씹어 먹고 싶지 않니, 새들 말이야. 입가에 머무르면 달콤한 금속성의 눈 맛이 나잖아. 입안 한가득 새들을 내보내지 않고 와득 씹고 싶을 때. 있지 않니. 웅덩이가 말라가도 아가미들은 나무에서 계속 열릴 거고. 묶인 핏줄을 하나하나 풀다보면, 새들의 둥지는 뭐로 만들까.
 
문 열어.
 
금속성의 눈이 내리잖아.
세상은 자꾸 굳은 물감 같잖아.
 
새알이 든 둥지를
머리 위에 올리면
액체의 금속이 흘러
 
자,
 
이제 기린이라 불러라.
 
※ 가작
 
영양 교환/추일범

죽은 고양이를 세 번 봤다
로드킬은 빼고
 
골목에 밥그릇이 엎어져 있다
토한 우유처럼 고양이가 누워있다
빈 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이런 것도 밥이라고
 
먹을 것 주변엔 개미가 꼬인다
개미를 죽이는 방법은 많다
한 마리씩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도 있고
침을 뱉어 죽일 수도 있다
굴을 찾아 따뜻한 물을 부으면 더 많이 죽일 수 있다
잼이나 설탕으로 반죽한 붕산을 놓는 방법도 좋다
집으로 돌아간 개미들은 빵을 나누어 먹고
배가 부풀어 함께 죽는다고 한다
 
태우는 데 두 시간쯤 걸립니다
고양이는 죽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것도 몸이라고
가는 길이 멀면 내장을 제거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상자에 넣고 리본을 묶었다
 
고양이를 안고 온 사람이 눈물이 안 난다고 했다
자기도 울 줄 아는데 가끔 이러는 거라고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스콘 하나를 나눠 먹으며 기다렸다
 
저도 정말 슬프고 싶어요
 
빈 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이런 것도 일이라고
고양이 세 마리가 죽는 것으론
끝나지 않는다
 
오래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겨울이었다

♣ 심사평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의응답 사이에서 …
 
세계사의 아슬한 난간을 모든 인류가 함께 붙잡고 있는 상황이 과연 당대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상상보다 더 끔찍해진 현실이 섬세하고 정치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이제까지 그 질문들을 예민한 일부의 사람들만 수용했다면 이번에는 모든 인류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투고작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 때문에 시의 행간은 길어지고 시적 경향은 어둡고 다양해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한 분은 유휘량의「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와 추일범의 「영양교환 」, 이선락의「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등이다.
유휘량의 ‘기린 ’을 발견한 것은 좋은 일이다 . 환상과 서정의 플랫폼에서 울림을 구축한 유휘량의「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의 ‘기린’은 시적 화자의 그림자 놀이에서 탄생된 발명이다. 불빛에 제 몸을 맡기면 목이 길어지는 그림자 /기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목이 길어진다는 것은 불빛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간절하다는 갈망의 의태이기도 하다. 기린의 파트너로서 ‘새 ’라는 키워드 역시 그림자 놀이에서 추출된 두 손의 변주이다. 그 새는 그림자 /기린의 돌기이면서 또한 외부로 향하는 메신저이기도 하면서 누군가 그림자에게 보낸 메신저이기도 하다. 내부에서 고독사로 향하는 새, 외부로 나가지 않으려는 새를 씹어먹으면서 기린/그림자의 외부는 딱딱한 눈이 내리거나 자꾸 굳은 물감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새알의 둥지에서는 액체의 금속이 흘러내리는 종말의 세계가 시작된다. 그러니 이제 나를 자아와 겨우 연결된 기린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삶이 기린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죽은 고양이를 세 번 봤다/ 로드킬은 빼고”라는 맹렬한 도입부는 추일범의「영양교환 」이다. ‘이런 것도 밥’, ‘이런 것도 몸’, ‘이런 것도 일’을 행사하던 죽은 고양이 세 마리는 우리 생활의 공감각 부분이다.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를 실천하는 중이기도 할 터이다. 누군가 우리를 사육하고 있고, 더 끔찍한 것은 누군가 우리를 고양이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고양이의 주검에 휘발성 냉소가 건너가는데, 다시 끔찍한 것은 그게 차라리 비애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사람의 의무가 있다는, 단호하고 간결한 추일범의 고유성이 눈을 사로잡는 이유이다.
 
이선락의 「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은 관찰의 측면에서 시의 전범을 드러낸 가편이다. 사물과 사람이 가진 밝음과 어둠, 슬픔과 기쁨이라는 ‘안팎 과 ‘좌우’를 어김없이 추스리면서 다시 사물과 사람에 대해 되돌아오게끔 한다. 게다가 리듬이 시를 잘 부추기고 있다. 시의 이야기라는 측면에 눈을 뜨게 된다면 이선락의 시적 영토가 어디까지 벋어나가게 될지 짐작할 수도 없다.
 
이은경의 「창, 세기」는 사물이 가지는 매혹에 헌신한다.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물질과 영혼으로서의 ‘창(窓)’을 넘나드는 충분한 존재들이 여기 있다. 때로 눈부시고 때로 끔찍한 것들, 그게 같은 인과율인 것을 소스라치게 깨닫는 지점이 돋보인다.
 
최정민의「껍질에 베인 손」, 김희숙의「털실로 얼음 들기에도 우리가 서성거리고 편애했다는 것을 덧붙인다 .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의 응답 사이에서 우리는 유휘량의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를 당선작으로, 추일범의 「영양교환을 가작으로 선택했다. 당선된 두 분에게 축하를, 여기까지 힘겹게 도착한 분들의 여정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심사위원 (장석주 송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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