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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2022년 광남일보 신춘문예]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이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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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4-11 22:55: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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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이정임

  잘방잘방

  가을 강은 할 말이 참 많답니다
  저렇게 눈부신 석양은 처음이라고 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
  도무지 닫혀 있던 입
  흰 귓바퀴 꽃을 봅니다
  안개 짙은 그 하얀 꽃을요

  나는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한 바퀴 즐거운 나의 집 , 두 바퀴 세 바퀴 현 (絃 )을 타 봅니다 눈 감고 오물오물 따라하는 어르신 핑 돌아 떨어지는 눈물 한낮의 요양원 창밖으로 찔끔 찍어 냅니다 사람들은 먼 나무 위에 앉아 졸고 가을 강은 나를 자꾸 떠밀고 갑니다 알 없는 안경 너머로 두 다리 유니폼의 건장한 날이 있습니다 서슬 퍼런 기백이 있습니다 백지로 두고 떠나자고 말한 적 있답니다 구절초 강아지풀 억새 어우러진 둔덕 제 모습에 반해 석양을 품은

  비록 비위관 (脾胃管 )에 연명하지만 포르르 동박새 동백나무에 오르고 옛 기억 하나둘 돌아옵니다 참 맑은 하늘이 도리질 치다가 풀썩 잠이 들라 합니다 퐁당 물구나무를 서거나 물비늘을 따라 멀리멀리 헤엄쳐가기도 하는

  가을 강은 심하게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소실점 잘방잘방 아스라이 붉은
 
이정임
- 전북 임실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3 학년 휴학 중 
- 현재 남양주시 장애인복지관 근무 (사회복지사 )
 
♣ 심사평

 밤을 새워 영혼의 즙을 짠 문청들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시를 쓰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지 않고 시를 쓴 이는 없습니다 . 그럼에도 세상엔 끊임없이 시를 쓰는 이들이 태어나고 그들의 시에서 영혼의 위로를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삶과 시. 지극히 이질적인 두 존재의 병치야말로 현생 인류를 설명하는 가장 따스하고 지적인 방식 아닐는지요.
  ‘점자책 ’ 외 4 편 , ‘트라이앵글 ’ 외 4 편 , ‘내 안의 붙박이장 ’ 외 4 편 ,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 외 4 편의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 안이 따뜻해졌습니다 . 현실과 유리되지 않았고 난해시의 범람에서도 거리를 두고 있었지요 . ‘시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해야하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삶을 붙들고 있는 섬세한 현의 긴장이 느껴졌지요.
  ‘점자책 ’의 주인은 ‘손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의 꿈을 새들이 부리 끝으로 톡톡톡 문 열어 달라 ’ ‘혹등고래가 허공을 유영하듯 지느러미를 펄럭인다 ’고 묘사했습니다 . 세계를 인식하는 차이를 결핍감이 아닌 자신만의 이해로 받아들였지요. ‘트라이앵글 ’은 작은 타악기를 통해 인간의 의미에 다가가는 인식의 바다가 있었지요 ‘인간은 사랑을 이해하는 데 일생을 바친다 ’와 같은 범상한 인식이 트라이앵글의 진동을 통해 다가오는 순간 시의 본질이 은유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 ‘내 안의 붙박이장 ’은 함께 응모한 ‘별주부전이 생각날 때 쯤 ’과 함께 우리 시의 고질적인 난해성을 극복한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 낡은 가구와 고전을 통해 삶과 죽음 , 사랑과 이별 같은 인간의 본성을 쉬운 언어로 표현한 미덕이 있었습니다 .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을 읽어가는 동안 제목이 주는 일시적인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심성이 맑고 착한 시였지요 . 휠체어를 밀며 휠체어 안의 어르신에게 조용조용 가을 강을 얘기해 주는 모습이 따스했습니다 . 쉬운 언어가 갖는 촉촉한 질감이 강 건너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신비한 느낌이 있었지요 , ‘내 안의 붙박이장 ’과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 모두 당선작이 될 시의 품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을 당선작으로 정한 이유는 함께 응모한 ‘숙부 ’, ‘내가 꽃을 들여다보는 동안 ’, ‘그 봄 언저리 호박벌이 맨땅에서 구를 때 ’와 같은 시편들이 지닌 균일한 울림 때문이었습니다 .
  따스하고 섬세한 서정의 물결이 세계를 향한 큰 울림이 될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주는 , 멋진 시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심사위원 (곽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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