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조퇴/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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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퇴/강희정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 심사평
“쨍하고도 명징한 시, 탁한 세상에 차려놓는 기쁨”
시가 반드시 고통을 통과한 형태의 무엇은 아닐 것이다. 번민과 고뇌를 통과한 흔적을 날것의 형태로 그려 놓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시라거나 더군다나 그 누구도 홀릴 수 없는 시라면 신춘문예 같은 공모에선 감점법으로 접근하게 된다. 장점이 충분한 작품을 두고 고민을 했다.
진영심의 ‘꾸미지오 미용실’은 제목부터 즐거운 이야기의 향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여러번 읽게 되었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바늘에 비유했다는 사실에 일단 선자는 놀랐다. 하지만 ‘바늘’을 연상하고 ‘바늘귀’까지 끌어와 착상에 성공했다면 바늘귀에 뭐라도 꿰어야 하는데 그것이 빠진 채 후루룩 시를 맺고 말았다.
결국 강희정의 ‘조퇴’를 당선작으로 선한다.
새해에 여는 시 한 편으로서의 자격과 미덕을 찾자면 단연 양명함이었다.
동시(童詩)의 마스크를 쓴 시라고 가볍게 평할 수 있겠으나 이 시의 아름다움은 시 속에서 자기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과감할 정도로 배제시키는 능력으로 완성도를 일으켰고 그것은 어떻게든 자신을 과잉하게 드러내려는 수많은 응모작들 속에서 분명한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멋진 다이빙이었다. 쨍하고도 명징한 시 한 편을 골라 탁한 세상의 공기에 차려놓는 기쁨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이병률)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 심사평
“쨍하고도 명징한 시, 탁한 세상에 차려놓는 기쁨”
시가 반드시 고통을 통과한 형태의 무엇은 아닐 것이다. 번민과 고뇌를 통과한 흔적을 날것의 형태로 그려 놓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시라거나 더군다나 그 누구도 홀릴 수 없는 시라면 신춘문예 같은 공모에선 감점법으로 접근하게 된다. 장점이 충분한 작품을 두고 고민을 했다.
진영심의 ‘꾸미지오 미용실’은 제목부터 즐거운 이야기의 향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여러번 읽게 되었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바늘에 비유했다는 사실에 일단 선자는 놀랐다. 하지만 ‘바늘’을 연상하고 ‘바늘귀’까지 끌어와 착상에 성공했다면 바늘귀에 뭐라도 꿰어야 하는데 그것이 빠진 채 후루룩 시를 맺고 말았다.
결국 강희정의 ‘조퇴’를 당선작으로 선한다.
새해에 여는 시 한 편으로서의 자격과 미덕을 찾자면 단연 양명함이었다.
동시(童詩)의 마스크를 쓴 시라고 가볍게 평할 수 있겠으나 이 시의 아름다움은 시 속에서 자기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과감할 정도로 배제시키는 능력으로 완성도를 일으켰고 그것은 어떻게든 자신을 과잉하게 드러내려는 수많은 응모작들 속에서 분명한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멋진 다이빙이었다. 쨍하고도 명징한 시 한 편을 골라 탁한 세상의 공기에 차려놓는 기쁨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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