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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두부하기/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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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81회 작성일 2025-03-07 11:54: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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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하기/정끝별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술술 샌다
이야기는 그렇게 실수로 시작된다

라스트 신은 비가 내리는 늦여름의 저녁 식탁,
숟가락 개수와 메뉴를 결정해야 해

물먹다 나왔는데 또 물먹으러 들어간다
시간의 맷돌은 돌아가고 똑딱똑딱 떨어져
고인 너의 나날은 푹푹 삶아져야 고소해지고
거품을 잘 거둬내야 순해진다
어쨌든 매순간의 물과 불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묵묵한 캐릭터가 필요해

오래된 짠물은 너의 단맛을 끌어 올려준다
뜨거운 장마를 불러오는 건 떼 구름이다
울렁이는 웅얼거림과 어처구니없는 울먹임이
먼 곳의 몸짓처럼 떼 지어 엉겨 떠올랐다가
젖은 무명 보자기에 싸여 단단해지는 이 플롯을
구원이라 할까 벌이나 꿈이라 할까

그리하여 조금 더 담담한 목소리와
조금 더 묵묵한 표정으로 맞이할 저녁 식탁에서

오늘도 만만한 희망으로 만만찮은 서사를 완성하려는,

한 번도 네게 말 걸지 않고 콩밭만 매던 말과
한 번도 널 마음에 담지 않고 콩밭에 간 마음이
네가 써 내려가야 갈 흰 밤처럼 깊다

그런 밤 어김없이 술술 새는 이야기 씨들이
부드러운 망각처럼 불려지고 있다 퉁퉁하다

출처 : 《시와 함께》(202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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