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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야학일기 1/정일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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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6회 작성일 2025-05-30 17:26: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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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일기 1/정일근

부모 잘 만난 네 또래 다들 자는 시간
열다섯 열여섯
한참 달콤한 잠을 포기하는 너희들에게
공돌이 공순이 신세에 조용필 노래만도 못하고
한 끼 라면도 되지 않는 한국사를 가르치며
나는 분단된 한국사보다 더 아프게 절망하누나
천막교실 찢어진 틈새로 언뜻언뜻 보이는
초겨울 별빛들이 파리하게 부서지고
폭포마냥 쏟아지는
허기보다 독한 잠을 견디지 못해
옷핀을 찌르는 순이의 손등 위로 붉은 피가 맺혔다
아아 나는 더이상 갑오년 이야기만 할 수가 없어
돌아서서 안경을 닦는 척 값싼 눈물을 훔치고
너희들은 보국안민
네 글자를 또박또박 받아 적었다
어디 우리의 슬픔이 갑오년 죽창이 되어
이 땅의 거대한 어둠을 찌를 수 없을까마는
미싱기와 잔업에 시달리다 행여 늦을세라
마지막 시간 작업복 차림으로 달려온 너희들을 위해
따뜻한 희망과 밥이 되지 않는 한국사만
분노하고 있구나
그날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구나

-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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