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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일] 달팽이의 등/주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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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5-16 11:54: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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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등/주용일

등에 물건 한 짐 지지 않고
사막을 건넌 낙타가 없듯이
제 앞의 마른 생 건너기 위해서는
달팽이의 끈적이는 침샘 같은,
축축한 발바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기, 땡볕 아래 껍질 등에 진
달팽이 한 마리 길 건넌다
저녁 향해 먼 길 간다
혀 빼물고 게 게 침 흘리며
풀잎 위에 맨땅 위에 젖은 물길 놓아
제 생을 미래 쪽으로 밀어 부친다
헐떡이는 숨소리 아래로 곧 증발되고 말
달팽이의 생이 축축하게 만들어 진다
약간 기울은 어깨의 각도와 등의 넓이가
달팽이의 고통이나 슬픔의 무게를 만들고 있다
껍질을 길 건너에 부리기까지
달팽이 보드라운 등에는 굳은살이 박힐 것이다
어느 한날,
껍질 무동 태우던 등은 사라지고
짐만 남아 비바람에 삭아갈 것이다
껍질도 사라지고 난 뒤에는
등을 누르던 무게만 실하게 살아 빛날 것이다

 - 주용일,『꽃과 함께 식사』(고요아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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