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장석주 > 자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017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8,764
  • H
  • HOME

 

[장석주] 서른 즈음/장석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15회 작성일 2025-04-17 07:48:14 댓글 0

본문

서른 즈음/장석주
 -가객을 위하여

망원 인근의 근심들이 북적대는 여름 저녁,
시장 끝 좌판들이 모인 데를 지나니
열기 잃은 햇빛은 진흙 얼굴들을 굽고
나는 비탈 많은 데를 돌아온 구두를 본다.

트로이 들판에는 개양귀비 꽃들이 흔들리고
무화과나무와 돌무더기를 돌아 나올 때 내 생각은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서른 즈음이라면 나쁜 패를 쥐고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서른 즈음이라면 나는 저녁마다
거리를 헤매며 알제리 해변을 상상하고
생몰연대를 모르는 이의 전기를 읽었을 것이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구나, 하고 안심하며
시골에서 살구나무를 심고 텃밭에 파나 키우지만
싸움은 아직도 나의 비탈이다.

서쪽을 편애하는 이가 망원에 산다.
그가 왜 싸움을 피하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생애의 유적지 한가운데 서서
떠나간 서른 즈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혼자 조용히 되새겨보는 것이다.

- 박준 외,​『이럴 땐 쓸쓸해도 돼』(천년의상상, 20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