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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근] 내 친구 박원택/정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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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4-14 15:00: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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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박원택/정병근

그라면 말할 수 있다
불알 두 쪽 차고 서울 올라와
구두를 닦다가 자장면을 나르다가
쇠를 지지다가 전기 기술자가 된 사연,
안 해본 일 없는 그의 손을 보라
절삭기에 썩둑 잘린 오른손 인지 끝이 부끄러워
사람과 악수할 때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왼쪽 손등에는 전기 스파크에 데인 자국
팔뚝엔 담뱃불로 지진 흔적 선명하다
그는 대체로 잘리고 데이고 지지면서 살았다
운명의 불똥이 그의 몸을 몇 번씩이나 뚫고 지나갔다
견디다 못한 아내가 도망가자
그는 아이들을 복지원에 맡겨놓고
설비 회사 바닥에서 혼자 자고, 밥 먹는다
내 친구 박원택이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수줍게 웃으면서 술잔 비었다고 말할 수 있다
술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칠 수 있다

​- 『번개를 치다』(문학과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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