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검은 담즙/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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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담즙/조용미
가슴속에서 검은 담즙이 분비되는 때가 있다 이때 몸속에는 꼬불꼬불 가늘고 긴 여러 갈래의 물길이 생겨난다 나뭇잎의 잎맥 같은 그 길들이 모여 검은 내, 흑하(黑河)를 이루었다
흑하의 물줄기는 벼랑에서 모여 폭포가 되어 가슴 깊은 곳을 가르며 옥양목 위에 떨어지는 먹물처럼 낙하한다
폭포는 검은 담즙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의 죄는 비애를 길들이려 한 것이다 생의 단 한 순간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비애는 그을린 태양 아래 거칠고 긴 숨을 내쉬며 가만히 누워 있다
쓸갯물이 모여 생을 가르는 검이 되기도 하다니 검은 폭포 아래에서 모든 것들은 부수어져 거품이 되어 버린다 거품이 되어 날아가는 것들의 헛된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수 있을까
비애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너의 죄는 비애를 길들이려 한 것이니 환(幻)이 끝나고 종(滅)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삶은 다시 시작되는 것을 검은 담즙이 모여 떨어지는 흑하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지상에서 가장 헛된 것이라 부르겠다
지상에서 가장 헛된, 그 아름다움의 이름은 멀종(絶滅)이다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가슴속에서 검은 담즙이 분비되는 때가 있다 이때 몸속에는 꼬불꼬불 가늘고 긴 여러 갈래의 물길이 생겨난다 나뭇잎의 잎맥 같은 그 길들이 모여 검은 내, 흑하(黑河)를 이루었다
흑하의 물줄기는 벼랑에서 모여 폭포가 되어 가슴 깊은 곳을 가르며 옥양목 위에 떨어지는 먹물처럼 낙하한다
폭포는 검은 담즙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의 죄는 비애를 길들이려 한 것이다 생의 단 한 순간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비애는 그을린 태양 아래 거칠고 긴 숨을 내쉬며 가만히 누워 있다
쓸갯물이 모여 생을 가르는 검이 되기도 하다니 검은 폭포 아래에서 모든 것들은 부수어져 거품이 되어 버린다 거품이 되어 날아가는 것들의 헛된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수 있을까
비애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너의 죄는 비애를 길들이려 한 것이니 환(幻)이 끝나고 종(滅)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삶은 다시 시작되는 것을 검은 담즙이 모여 떨어지는 흑하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지상에서 가장 헛된 것이라 부르겠다
지상에서 가장 헛된, 그 아름다움의 이름은 멀종(絶滅)이다
-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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