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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뚱뚱한 슬픔/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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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5회 작성일 2025-04-14 14:56: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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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슬픔/정일근

봉길바다* 갈매기는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조나단이 될 수 없다, 조나단은
높이 날아 먼 곳을 보려했지만, 봉길바다
갈매기는 낮게 날아 많이 먹으려할 뿐이다
사람이 던지는 먹이를 따라
그 높이쯤에 길들여져 사는 뚱뚱한 갈매기를
이제는 더 이상 바닷새라 이름 하지 말자
바다를 잃어버린 텃새, 오직 먹이 좇아
화려한 군무 펼치는 봉길바다 갈매기를 보며
무용대학 나와 서라벌민속식당 일본관광객 앞에서
부채춤 추는 후배의 퇴화된 꿈을 기억한다
이사도라 던컨을 꿈꾸었던 후배가, 다시는
경제로 굵어진 허리로 발레복을 입지 못하듯
봉길바다 갈매기는 먼바다로 날아가지 못한다
갈매기가 펼치는 기름진 날개와
후배가 펼치는 화려한 부채는
고래의 몸속으로 퇴화된 손과 같은 슬픔이다
의미가 아니라 풍경이 되어버린 뚱뚱한 슬픔들이
봉길바다에서 먹이를 찾아 부채춤을 추고 있다

- 『오른손잡이의 슬픔』(고요아침,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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