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핸드크림/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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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크림/정일근
동북행으로 떠나는 시외버스터미널 설핏설핏 진눈깨비 뿌리는 이른 새벽 첫차 기다리는 중늙은이 남자 단단한 중키에 꽁지머리, 몸은 굵어 남루한 군청색 점퍼가 찢어질 듯 팽팽하다
배웅하는 여자는 남자의 머리 하나 더한 큰 키다 마스크로 얼굴 가렸지만 마마로 얽었다 사랑으로 불러주기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다고 생각했다 버스 출발시간 가까워지자 마주 보고선 안타까운 듯 눈빛 깊어져 서로를 담기 바쁘다
남자와 여자 사이 이별의 침묵이 흐른다 그때! 여자가 생각난 듯 핸드크림 꺼낸다 자신의 손바닥에 듬뿍 짜서 남자의 손등에 골고루 바른다 북쪽에 대설주의보 내렸다는 경보 뜨고 여자의 저 절실함이 남자의 눈물을 만든다
젊어서 나는 화려한 사랑의 운명론자였다 육십 고개 오르며 배운다 세기의 사랑만 사랑 아니다 운명의 사랑만 사랑 아니다 터져서 갈라진 남자의 저 손에 전해지는 핸드크림 하나만으로도 이 또한 뜨거운 사랑이니.
- 정일근,『소금 성자』(산지니, 2015)
동북행으로 떠나는 시외버스터미널 설핏설핏 진눈깨비 뿌리는 이른 새벽 첫차 기다리는 중늙은이 남자 단단한 중키에 꽁지머리, 몸은 굵어 남루한 군청색 점퍼가 찢어질 듯 팽팽하다
배웅하는 여자는 남자의 머리 하나 더한 큰 키다 마스크로 얼굴 가렸지만 마마로 얽었다 사랑으로 불러주기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다고 생각했다 버스 출발시간 가까워지자 마주 보고선 안타까운 듯 눈빛 깊어져 서로를 담기 바쁘다
남자와 여자 사이 이별의 침묵이 흐른다 그때! 여자가 생각난 듯 핸드크림 꺼낸다 자신의 손바닥에 듬뿍 짜서 남자의 손등에 골고루 바른다 북쪽에 대설주의보 내렸다는 경보 뜨고 여자의 저 절실함이 남자의 눈물을 만든다
젊어서 나는 화려한 사랑의 운명론자였다 육십 고개 오르며 배운다 세기의 사랑만 사랑 아니다 운명의 사랑만 사랑 아니다 터져서 갈라진 남자의 저 손에 전해지는 핸드크림 하나만으로도 이 또한 뜨거운 사랑이니.
- 정일근,『소금 성자』(산지니,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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