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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도] 온암리/조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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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4회 작성일 2025-04-14 13:20:0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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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암리/조재도

온암리는 고향
난 곳은 아니지만 내가 자라난
논과 밭과 밥상보만한 하늘이 보이는 곳
산 따라 산자드락 따라 여기저기 놓인
돌보 열두 매기 중 제일 큰 동네

느티나무 보건소 옆
낡은 함석집
병신 자식과 바글바글 속끓이며
어머니가 사는

그 어머니의 아버지, 해방 때 박헌영일 만나도 보았다는
내게도 도깨비 주문 제갈공명 장가든 얘기 들려도 주던
지금은 죽어 산에 묻힌 외할아버지가 살았던

내 동무 순례, 순경에게 시집간, 순례 어머니
이따금 마실 와 소새부리로 조잘대던
칠갑산 천정호수에 주검으로 떠오른, 내 동무 순례, 순례 어머니가 살았던

밤이면 삵아지가 닭을 물어가고
여름이면 애장터에 여수가 울던

고샅마다 핀 감꽃 살구꽃
울 삭정이 따라
호박순 나팔꽃 애증의 순앵이 뻗어도 가던

어찌 보면 바람과 물과
일월이 가는 길 한 점 티끌과도 같은
또 어찌 보면 내 가슴속 완강히 뿌리내린 굴참나무 같은
어쩐지 섧고
어쩐지 쓸쓸하고
어쩐지 사그라드는 모닥불 온기도 같은

- 조재도,​『그 나라』(세계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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