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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추] 등꽃/정낙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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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8회 작성일 2025-04-12 19:41: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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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정낙추

초등학교 뒷문 앞 구멍가게 할머니는
등나무가 못마땅하다
옛날엔 코 묻은 돈푼깨나 만졌지만
폐교를 앞둔 지금은 개점휴업
집안 일이 술술 풀리지 않는 것을
배배 꼬인 등나무 탓으로 돌린다

마늘밭 매러 품팔이 간 며느리가
돌아오지 않는 밤
등꽃 환하게 밝힌 꽃그늘 아래서
등 꼬부리고 앉아 열무를 다듬는 할머니는
혼자된 며느리 소문이 안 좋은 것도
얼기설기 망측하게 끌어안은 등나무 탓이라
또 욕을 해댄다

어미 앞에 먼저 간 자식이 심은 등나무
차마 베어내지 못하고
무더기로 핀 등꽃 송아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그때마다 파르르 떨어지는
연보라색 꽃잎 위로 겹쳐지는
손자 녀석 얼굴
흐린 눈으로 마을길을 바라봐도 인기척은 없고
할머니 흰머리 위에 매달린 등꽃들
이리저리 흔들리며 봄밤을 희롱한다

- ​『그 남자의 손』(도서출판 애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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