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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어떤 평화/정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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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8회 작성일 2025-04-08 11:10: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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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평화/정현종

 오후의 산촌.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 하나가 앉아서 소가 풀 먹고 새김질하는 걸 바라보고 있다. 가까이 가는 사람도 못 느끼고 정신없이 보고 있다. 문득 나를 알아차리고 쳐다보며 얼른 "어디 살아요?" 하고 묻는다. "나는 서울 사는데 너는 여기 사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천하를 안심하고 다시 소한테로 눈길을 돌린다. 소 주려고 우리 바깥에 있는 짚을 한 움큼 집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얼굴로 "그거 잘 먹어요" 한다. 그 목소리 속에는 친근감과 기쁨이 들어 있다(자기가 하는 짓을 낯선 사람도 하는 데서 느끼는 친근이요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내 마음에 또렷한 그 '풀 먹고 있는 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나는 가끔 바라본다. 잊히지 않는 그림. 지지 않는 꽃. 평화여.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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