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콩나물을 키우는 여자/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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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을 키우는 여자/정호승
콩나물을 키우는 여자에겐 콩나물이 꽃이다
아침마다 꽃에 물을 주듯 콩나물에 물을 주면
산수유 피듯 연노란 콩나물꽃이 피어난다
여기저기 약봉지가 흩어진
어두운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봄이 올 때까지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고 또 부으면
콩들이 그녀의 슬픔에 못 이겨 어둠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하루에도 몇번씩
물을 주는 여자의 손에 깊이 뿌리를 내리다가
담쟁이처럼 창밖으로 길게 벽을 타고 뻗어나가다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얼굴이 떠 있는
새벽하늘을 향해 잔뿌리를 내린다
어둠 속에서 어둠의 물로
콩나물을 키우는 여자에겐 콩나물이 눈물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슬픔의 콩을 꺼내
콩나물시루에 반쯤 담고 물을 부으면
어둠 속에서도 산수유 같은 콩나물꽃들이 눈부시다
- 정호승,『여행』(창비, 2013)
콩나물을 키우는 여자에겐 콩나물이 꽃이다
아침마다 꽃에 물을 주듯 콩나물에 물을 주면
산수유 피듯 연노란 콩나물꽃이 피어난다
여기저기 약봉지가 흩어진
어두운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봄이 올 때까지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고 또 부으면
콩들이 그녀의 슬픔에 못 이겨 어둠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하루에도 몇번씩
물을 주는 여자의 손에 깊이 뿌리를 내리다가
담쟁이처럼 창밖으로 길게 벽을 타고 뻗어나가다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얼굴이 떠 있는
새벽하늘을 향해 잔뿌리를 내린다
어둠 속에서 어둠의 물로
콩나물을 키우는 여자에겐 콩나물이 눈물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슬픔의 콩을 꺼내
콩나물시루에 반쯤 담고 물을 부으면
어둠 속에서도 산수유 같은 콩나물꽃들이 눈부시다
- 정호승,『여행』(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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