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반고등어/이성목 ​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244
어제
1,043
최대
3,544
전체
348,959
  • H
  • HOME

 

[이성목] 자반고등어/이성목 ​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43회 작성일 2025-05-18 10:03:36 댓글 0

본문

자반고등어/이성목

오래 소장하고 싶다면
이 책은 표지만 읽어야 한다
첫 쪽을 쓰다가 고스란히 백지로 남겨둔
이 육신을 눈으로만 읽어야 한다
이면과 내지가 한 몸인 그를
몇 장 넘겨보기도 했지만
뒤집을 때마다 생살 타는 냄새가 나는
이 책은 너무 오래 읽어서는 안 된다
그 기록은 물로 쓰고 소금으로 새겨져서
팍팍하고 짤 뿐만 아니라 비릿한
등 푸른 언어와 유선형 문장은 쉽게 타버린다
쉽게 부서지고 쉽게 헤져서
가시와 살점이 지글지글 뿜어내는 푸른 바다와
바다의 내밀한 구전을 다 읽지 못하게 된다
슬쩍 넘기다 우연히 본
온몸 빼곡히 쌓아둔 흰 종이들
그를 읽을 때는 그 백지마저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한장 한장 넘겨 보아야한다
육신을 제본했던 스테이플러 같은 가시가
목구멍에 컥 걸리기도 하는
난해한 이 책은
붉은 혓바닥으로 받들어 읽어야 한다

-  『노끈』(도서출판 애지, 20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