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 나도풍란/임영조
페이지 정보
본문
나도풍란/임영조
남녘 끝 섬마을서 시집 와
육 년 남짓 애를 갖지 못하고
죄인처럼 살아온 우리 형수가
오늘은 <나도> 하고 말문을 텄다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참았던 슬픔 모두 다 터져
하얀 분냄새로 웃는 형수여
그 웃음 깊은 속 누가 또 알리
대관절 가슴에 서린 한이
얼마나 크고 사무쳤길래
푸르고 질긴 잎에 예서체(隸書體)로 숨겼다가
오뉴월 눈시린 서릿발로 치는가
(참고 기다린 자 복이 있나니)
아픔도 터지면 꽃이 되는가
오랜 산고(産苦)를 비로소 풀듯
코끝 아려오는 향긋한 몸내로
세상과 눈인사를 트는 꽃이여,
나는 듣는다
우리가 밀쳐둔 기억 밖에서
절망처럼 죄어드는 세월을 감고
슬픈 씨를 수태한 여인의 개화(開花)
그 서럽고 빛부신 이야기를 듣는다.
- 『흔들리는 보리밭』(문학사상사, 1996)
남녘 끝 섬마을서 시집 와
육 년 남짓 애를 갖지 못하고
죄인처럼 살아온 우리 형수가
오늘은 <나도> 하고 말문을 텄다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참았던 슬픔 모두 다 터져
하얀 분냄새로 웃는 형수여
그 웃음 깊은 속 누가 또 알리
대관절 가슴에 서린 한이
얼마나 크고 사무쳤길래
푸르고 질긴 잎에 예서체(隸書體)로 숨겼다가
오뉴월 눈시린 서릿발로 치는가
(참고 기다린 자 복이 있나니)
아픔도 터지면 꽃이 되는가
오랜 산고(産苦)를 비로소 풀듯
코끝 아려오는 향긋한 몸내로
세상과 눈인사를 트는 꽃이여,
나는 듣는다
우리가 밀쳐둔 기억 밖에서
절망처럼 죄어드는 세월을 감고
슬픈 씨를 수태한 여인의 개화(開花)
그 서럽고 빛부신 이야기를 듣는다.
- 『흔들리는 보리밭』(문학사상사, 199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