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 일월 상조/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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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 상조/임영조
대학은 다르지만 아내와 나는
시인 구용 선생 제자다
결혼하고 한참 지난 어느 해 가을
선생댁에 문안차 함께 갔다가
뜻밖에 선물 받은 붓글씨 한 점
표구해서 걸라고 하셨으나
집구석 어딘가에 잘 모셔두고
덤불 같은 세월 잡고 허둥대느라
스무 몇 해 깜박 잊고 살았다
이따금 기억의 갈피를 뒤졌으나
번번이 찾지 못하고, 지난 여름
아내와 간월도에 가서 보았다
서녘 하늘에 지는 해가
수평선 지척에서 벌겋게 취해
무엇이 아쉬운 듯 주춤거릴 때
동녘 하늘엔 상현달이 뜨고 있었다
'日月相照'
우리는 말없이 바위에 앉아
해와 달이 서로 비추는 금슬
그 명명한 만다라를 다시 읽었다
수묵 같은 어스름 엷게 번진 해변을
우리는 오랜만에 손을 잡고 걸었다
누군가 등 뒤에서 깔깔 웃었다
돌아다보니, 거나하신 노을이
'차암 좋다, 좋아 보여!'
멀리서 연신 무릎을 치며
절묘한 丘庸體로 웃고 계셨다.
- 『시인의 모자』(창작과비평사, 2003)
대학은 다르지만 아내와 나는
시인 구용 선생 제자다
결혼하고 한참 지난 어느 해 가을
선생댁에 문안차 함께 갔다가
뜻밖에 선물 받은 붓글씨 한 점
표구해서 걸라고 하셨으나
집구석 어딘가에 잘 모셔두고
덤불 같은 세월 잡고 허둥대느라
스무 몇 해 깜박 잊고 살았다
이따금 기억의 갈피를 뒤졌으나
번번이 찾지 못하고, 지난 여름
아내와 간월도에 가서 보았다
서녘 하늘에 지는 해가
수평선 지척에서 벌겋게 취해
무엇이 아쉬운 듯 주춤거릴 때
동녘 하늘엔 상현달이 뜨고 있었다
'日月相照'
우리는 말없이 바위에 앉아
해와 달이 서로 비추는 금슬
그 명명한 만다라를 다시 읽었다
수묵 같은 어스름 엷게 번진 해변을
우리는 오랜만에 손을 잡고 걸었다
누군가 등 뒤에서 깔깔 웃었다
돌아다보니, 거나하신 노을이
'차암 좋다, 좋아 보여!'
멀리서 연신 무릎을 치며
절묘한 丘庸體로 웃고 계셨다.
- 『시인의 모자』(창작과비평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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