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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고드름/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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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3회 작성일 2025-04-18 10:28: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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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이영광

햇살에 베인 처마 끝이 미닫이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다
소한小寒 바람이 입가의 술 냄새를 닦아주고 간다
물인 줄 알고 마신 술
알고 보니 불이었다
불타버린 나의 內部
식은 재 날리는 벌판의
모래 언덕의 모래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본다

문득, 거대한 짐승의 뱃속에서
하루 쉬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렁주렁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들
티라노의, 단검 같은 이빨 같은
고드름들은, 누군가 나에게 겨눈
창끝 같기도 하고
간밤 내가 그에게 드러낸 적의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고드름들은
뾰족한 끝에서부터 한 방울씩 녹아내리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용서하고 있다
이제야 누군가에게 용서받고 있다

-  『직선 위에서 떨다』  (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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