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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내각리 옛집/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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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9회 작성일 2025-04-18 09:52: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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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리 옛집/이영광

내각리에는 늙은 집들 있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끝나면 불러 모아놓고
서무과 누나가 나눠주던 구호품,
옥수수빵 껍질 같은 지붕을 덮고
'立春大吉'이나 붉은 글씨의 '개조심'
경고문을 써붙인 대문들 아직 있다
세월에 '어름'을 파는 담벼락 허리춤에도
봄날은 다시 와서, 저녁길
어스름 저녁길을 수선하고 있다
뼛국처럼 뽀얗게 스미고 있다
80년대에 학교 다닌 60년대 생,
새 천년에 다시 80년대로 이주한 삼십대들이
일 끝내고 돌아오는 47번 국도
국밥집이 있는 정류장
둥근 흡반의 골목길
감꽃 지는 완자창에 가만히 귀 대이면
한숨 소리 숟가락질 소리
아직도 바깥을 떠돌고 있니
묻는 소리, 시큰거린다
내각리엔 옛날 집들, 옛날 집들 비어 있다

 -  『직선 위에서 떨다』(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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