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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 고로쇠나무의 마지막 봄날/엄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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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5회 작성일 2025-04-18 09:27: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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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나무의 마지막 봄날/엄원태

 그 골짜기에서, 지난여름 태풍에 목이 부러진 고로쇠를 보았다. 부러지며 찢겨 둥치에 매달린 채 쓰러진 나무는, 머리채를 땅바닥에 퍼지른 채 엎어진 덩치 큰 여자같았다. 안간힘을 다해 모진 비바람을 견뎌냈던 이파리들은 창졸간에 누렇게 말라들며 제 어미의 몸에서 가녀린 손목들을 놓아버렸다.

 겨울 가고, 다시 온 봄날은 그러나 그저 어쩔 수 없어서, 부러진 둥치로도 살아남은 뿌리는 하염없이 수액을 제 슬픔인 양 밀어올리는 것. 수액이 목메도록 차오른 둥치, 부러진 부위에서 맑은 수액을 게워내어 제 몸통을 적신다.

 죽어가는 고로쇠나무 둥치가 꺼져가는 마지막 호흡으로 길어올리는 눈물…… 덧없이 짧은 봄날만 아니라면, 마냥 저리 장엄하지 않으리라.

- 『물방울 무덤』(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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