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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 골목 안 국밥집/엄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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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4회 작성일 2025-04-18 09:26:4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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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국밥집/엄원태

한동안 점심으로 따로국밥만 먹은 적이 있었다
골목 안의 그 식당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언제나 방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느릿느릿 차려주는 쟁반 밥상을
나는 수배자처럼 은밀히 찾아들어 먹곤 했다
밥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그 적요가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직장 동료와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을씨년스레 식은 드럼통 목로들을 둘러보며
그가 추운 듯 그 적요를 어색해하는 것을 보곤
이후 죽 혼자만 다녔다
가끔씩 국이 너무 졸아들어 짜진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채 언제나 적당히 젖어 있던
그 식당의 쓸쓸한 흙바닥까지 나는 사랑하였다
그 식당이 결국 문을 닫고
아이와 함께 늘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집수리가 시작된 철거 현장에서
나는 어린 딸아이의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가끔씩
덮어주듯 나직이 깔리던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허물어져가는 회벽 사이에서 햇살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  『소읍에 대한 보고』 (문학과지성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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