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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 저수지가 보이는 날/엄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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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0회 작성일 2025-04-18 09:05: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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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가 보이는 날/엄원태

이곳에 온 지 삼개월이 흘렀다
매일 아침 한떼의 오리들이 물위를 떠도는 것
찬찬히 망원경으로 내려다보다가,

차고 메마른 풍경에 스며들 때까지
나를 놓아버리곤 할 때가 있다
무심함이 이즈음의 나를 지켜주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배신당해본 자들은 그 쓸쓸함을 알 것이다
참담함이 자기를 지켜준다는 사실, 그 아이러니를
조용히 들여다보곤 하는 셈이다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이곳에서도 나는 매일 두 끼의 밥을 먹고, 또
이틀에 한번씩 병원에 가야 한다
내 몸에서 빠져나온 피는
길고 긴, 하수도 같은 파이프를 거치며
그 자양분과 요독과 노폐물, 수분을 빼앗긴 다음
진종일 어딘가 헤매다가
어지럼증과 함께 마른 내 몸으로 돌아오곤 할 것이다

내일은 아우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너의 영어(囹圄)생활은 어떠하냐,
안부를 묻고는 할말이 없을 것이다

한번씩, 소스라치게 전화벨이 울리곤 한다

- 『물방울 무덤』(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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