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의 담쟁이/오정국 > 아

그 골목의 담쟁이/오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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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쯤 전봇대에 기대어
지나가는 여학생에게 휘파람을 불었음 직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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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예닐곱 살 계집아이의
장난감 우산 같은
잎새들, 목을 꼬고 앉아 간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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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게 뒤쫓기던 누군가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었음 직한
막다른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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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바람결에 잎새들이 팔랑거리자
발목 붉은 새의
다리 같은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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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의 룸살롱 여자가 흥건하게 오줌을 누고
치마를 털고 갔음 직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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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벽돌에
새의 발자국 같은 게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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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잃고 술 마신 40대 가장의
국수면발까지 토해 내고 나서
눈물 글썽이며 쳐다보던
새벽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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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늘 아래
담쟁이가 뻗어 올랐다 거기, 벼랑 같은 담장을
아프게 아프게 밟아 올린
핏자국 같은 발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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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오는 것들』(도서출판 세계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