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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뿐인 생(生)/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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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뒤 곤달걀집에서
노란 부리를 내민 채 숨을 거둔
어린 병아리를 만났다 털을 뽑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맛소금을 찍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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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멍석에 달기똥 한 번 갈긴 적 없고
부지깽이 한 대 맞은 적 없는 착한 병아리,
언제부터 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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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 마셔본 적 없는 눈망울이
나를 내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폐가의 우물 속 두레박처럼
그의 눈망울에 비친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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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래 제자리를 에돌았는지, 병아리의
발가락과 눈꺼풀 위에 잔주름이 촘촘했다
하늘 한 번 우러러본 적 없는, 부검뿐인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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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창문에는, 그 줄기를 따라
작은 은박지 꽃이 붙여져 있었다
씨앗을 가질 수 있다는 듯, 은박지 꽃잎들이
앞다투어 바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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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록,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문학과지성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