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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파리/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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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1회 작성일 2025-04-14 16:09: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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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이정록

천북행 시내버스 운전사는
사람이 겁이 난다, 출입문을 열 때마다
사람은 한둘 그것도 경로우대권이지만
파리는 열댓 마리 더구나 무임승차라

그냥 놔두시게 기사 양반
그놈들도 광천장에 왔다 가는 겨

운전사는 파리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놈들 쫓으려고 문 열고 수선 떨어봤자
생선 비늘처럼 악착스런 쉬파리들까지
합승할 게 뻔한 일, 파리떼를 지고라도
사이사이 사람이 타는 게 고맙지
건성으로 파리채를 휘젓는다

미안유
먼저 장날 것두 다 뭇 잡었슈
잘 보면 집이 것두 있을뀨
낯익은 놈 있으면 인사들이나 나눠유

예끼 이 사람, 자네 등허리가
파리들한테는 아랫목이여
우리야 손님들인디
자네 식솔들을 면면 알 수 있간디

노인정 같은 천북행 시내버스가
푸른 논둑을 달린다, 바닷바람
출렁거리는 들판에 무선 다리미가 지나간다
주름은 그대로 놔두고, 소나기 한떼가
파리채처럼 天北을 친다

-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문학과지성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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