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 서호의 여인/오탁번
페이지 정보
본문
서호(西湖)의 여인/오탁번
붉은 연꽃 피어오르는 여름 한나절
모두들 땀 뻘뻘 흘리며 그짓 하고 나온 듯
혹은 걷고 혹은 자전거를 타고
서호를 맴돌던 항주의 젊은이들이
해 저물자 모두 연잎 뒤에 숨어버린 듯한
적막한 밤
간이 상점의 여주인과 말은 안 통하지만
서로 건네주는 술잔에는
아주 많은 것이 통해서
젖무덤 반쯤 비치는 비단옷 가슴으로
연봉에서 하얀 연심 꺼내 깨트려
술안주로 좋다는 시늉하며
내 입 안에 넣어준다
그짓 다 끝내고 나서 또 보채듯
흐린 전등 아래 눈웃음치는
여인의 긴 머리칼 너머
잠 못 이루는 서호는
붉은 연꽃 밤새 토해내고 있다
겨드랑이 아랫도리 다 젖는 밤에
사랑이란 이렇게 밤이슬 내리듯
대륙이나 반도나 다 같은 것일까
밤중에 홀로 피는 연꽃처럼
뿌리째 물 속 깊이 담그고 다 젖은 채
내 손목 잡아 끌어 연잎 위에 눕히는
서호의 여인아
왼종일 제 서방한테는 보여주지 않았던
붉은 연꽃 한 송이 되어
내 눈앞에 솟아오른다
호숫가 어둠에 숨어
사랑을 나누던 젊은이들도
자전거 타고 하나둘 사라진 깊은 밤
간이 상점의 흐린 전등 아래
여인의 몸은 서호의 물결에 다 젖는다
나도 다 젖는다
연꽃 봉오리
한밤중
서호에서
터진다
- 『1미터의 사랑』(시와시학사, 1999)
붉은 연꽃 피어오르는 여름 한나절
모두들 땀 뻘뻘 흘리며 그짓 하고 나온 듯
혹은 걷고 혹은 자전거를 타고
서호를 맴돌던 항주의 젊은이들이
해 저물자 모두 연잎 뒤에 숨어버린 듯한
적막한 밤
간이 상점의 여주인과 말은 안 통하지만
서로 건네주는 술잔에는
아주 많은 것이 통해서
젖무덤 반쯤 비치는 비단옷 가슴으로
연봉에서 하얀 연심 꺼내 깨트려
술안주로 좋다는 시늉하며
내 입 안에 넣어준다
그짓 다 끝내고 나서 또 보채듯
흐린 전등 아래 눈웃음치는
여인의 긴 머리칼 너머
잠 못 이루는 서호는
붉은 연꽃 밤새 토해내고 있다
겨드랑이 아랫도리 다 젖는 밤에
사랑이란 이렇게 밤이슬 내리듯
대륙이나 반도나 다 같은 것일까
밤중에 홀로 피는 연꽃처럼
뿌리째 물 속 깊이 담그고 다 젖은 채
내 손목 잡아 끌어 연잎 위에 눕히는
서호의 여인아
왼종일 제 서방한테는 보여주지 않았던
붉은 연꽃 한 송이 되어
내 눈앞에 솟아오른다
호숫가 어둠에 숨어
사랑을 나누던 젊은이들도
자전거 타고 하나둘 사라진 깊은 밤
간이 상점의 흐린 전등 아래
여인의 몸은 서호의 물결에 다 젖는다
나도 다 젖는다
연꽃 봉오리
한밤중
서호에서
터진다
- 『1미터의 사랑』(시와시학사, 199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