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김치찌개/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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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이재무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여름 저녁은 양푼에 찌개용 돼지고기와 묵은김치와 네모나게 썬 두부를 넣고 끓인 찌개를, 갓 지은 밥과 포장 김과 함께 먹고 싶다. 반주도 곁들이면 더욱 좋으리. 얼큰한 국물을 한 숟갈, 두 숟갈 뜨다보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은 돋아나리라. 싱겁게 살아온 하루를 맵짠 맛으로 달래다 보면 울컥, 설움이 자욱하게 솟기도 하리. 밖은 허공에 못 박듯 사선을 그으며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열린 창으로 빗소리가 들어와 찌개 속으로 첨벙 뛰어들기도 하리. 안부가 그리운 먼 곳의 사람아, 얼도 있고 큰도 있는 찌개가 아니라면 우리 어찌 저 매캐한 세월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오늘 저녁은 비가 와서 어둠이 근친처럼 살갑고 먼 곳의 네 얼굴조차 가차이에서 환하다.
- 『데스밸리에서 죽다』(천년의 시작, 2020)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여름 저녁은 양푼에 찌개용 돼지고기와 묵은김치와 네모나게 썬 두부를 넣고 끓인 찌개를, 갓 지은 밥과 포장 김과 함께 먹고 싶다. 반주도 곁들이면 더욱 좋으리. 얼큰한 국물을 한 숟갈, 두 숟갈 뜨다보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은 돋아나리라. 싱겁게 살아온 하루를 맵짠 맛으로 달래다 보면 울컥, 설움이 자욱하게 솟기도 하리. 밖은 허공에 못 박듯 사선을 그으며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열린 창으로 빗소리가 들어와 찌개 속으로 첨벙 뛰어들기도 하리. 안부가 그리운 먼 곳의 사람아, 얼도 있고 큰도 있는 찌개가 아니라면 우리 어찌 저 매캐한 세월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오늘 저녁은 비가 와서 어둠이 근친처럼 살갑고 먼 곳의 네 얼굴조차 가차이에서 환하다.
- 『데스밸리에서 죽다』(천년의 시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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