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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진부령을 넘으며/이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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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7회 작성일 2025-04-12 13:43: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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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을 넘으며/이건청

진부령을 넘는다.
절개지 건너 쪽이 핏빛 단풍에 젖고,
소방차들이 연거푸 싸이렌을 울리는
단풍 숲 속으로 직박구리 두 마리가
사라진다. 아스팔트 길 옆 대피라인에
차를 세우고,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디지털 카메라 화면에
아내 모습이 선연히 뜬다.
진부령 구비 길을 처음 넘었던 건
30년도 훨씬 전 첫 아이를 잉태한
아내와 함께였다.
상봉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를 탔었다. 한계령 길이 열리기 전이었다.
비포장이어서 버스는 쉼 없이 덜컹거리고
뱃속의 아이 때문에 아내는 좌석에서
선 채로 배를 끌어안고 험한 길을 견뎠었다.
30 몇 년이 지났고, 그때 아내 복중의 아이가
태어나 무용가가 되었고, 대학 강단을 지킨다.
백묵과 지우개와, 온라인 번호와 칫솔과
물에 젖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은
30 몇 년 내 길도 비포장 길이었음을
깎아내고 밀어내는 길트기였음을,
오늘, 진부령 고갯길을 오르며 깨닫느니
산이여, 일제히 나부끼는 핏빛 보자기 가득
단풍든 날들을 담아다오.

-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서정시학,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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