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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반반/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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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14회 작성일 2025-04-12 11:07: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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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반/이병률

여관에 간 적이 있어요 처음이었답니다

어느 작은 도시였는데
하필이면 우리는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여자 둘 남자 둘이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난감해하면서 방 하나는 안 된다고 하였기에
우리는 길을 잃은 사슴이었었지요

어찌어찌 방에는 들어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잠깐만 기다리라면서
끌듯이 커다란 병풍을 들고 왔더랬죠

정확히 방의 반을 가르는 병풍을 가운데 두고
남자들은 한쪽에 자고 여자는 다른 한쪽에 자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병풍을 사이에 두고 따로 누웠습니다
너머를 상관하기엔 막중한 게 버티고 있어
그냥 웃었던 것도 같습니다
나는 건너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라
달밤의 입자가 궁금했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데 섞여 잠을 자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머리에 환히 불이 들어오고서야 알았습니다

한참 세월 흘러 그 병풍을 사이에 두고 따로 잠을 잤던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인 두 사람은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여태 혼자로 살고 있으니

가릴 것은 가리고 나눌 것은 나누는
거참 신통한 병풍인가요

- 『바다는 잘 있습니다』(문학과지성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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