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이시영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539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9,286
  • H
  • HOME

 

[이시영] 겨울밤/이시영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39회 작성일 2025-04-08 08:02:49 댓글 0

본문

겨울밤/이시영

도봉산 지나 의정부 산골 마을에서 송(宋)과 함께 자취를 한 적이 있다. 건너편 방엔 삼양라면 다니는 ​처녀 다섯이 묵고 있었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처녀들이 타월로 머리를 묶고 우물가에서 어푸어푸 세수할 때가 좋았는데 그들의 흰 목덜미가 아침 햇살에 눈 시리게 ​빛났다. ​일요일이면 삼양동 사는 양금섭이가 클래식 ​기타를 ​들고 ​찾아와 우리 모두에게 알 수 없는 ​서양 노래들을 ​들려​주곤 ​하였는데 노래보다는 평상 위에 ​곤로의 심지를 ​잔뜩 올리고 부쳐먹던 감자전 맛이 더 좋았다.
이가 고른 한 처녀는 경상도 산청에서, 또 누구는 ​​인월에서 ​왔다고 하는데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깊이 ​패이는 ​처녀는 ​가슴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고요해지면 ​의정부 ​가는 ​미 2사단 장갑차들이 아스팔트를 파며 ​굉음을 울리고 ​도봉산 유원지의 전봇대들이 깜짝깜짝 ​놀라며 키가 클 ​것 ​같은 밤, 이불 속에 각자의 고단한 ​다리를 넣고 치는 ​육백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동창이 환히 밝아오기도 했다.

- 이시영,『은빛 호각』(창비, 20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