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와 이슬/오봉옥 > 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오늘
116
어제
861
최대
3,544
전체
297,863
  • H
  • HOME

 

[오봉옥] 거미와 이슬/오봉옥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이창민 조회 56회 작성일 2025-04-06 20:43:38 댓글 0

본문

거미와 이슬/오봉옥

거미의 적은 이슬이다
끈끈이 점액질로 이루어진 집은
이슬의 발바닥이 닿는 순간
스르륵 녹기 시작한다
눅눅해진 거미줄로는
그 무엇도 붙들 수 없어
허공을 베어 먹어야만 한다

거미는 숙명적으로
곡마단의 곡예사가 된다
가느다란 줄에 떼 지어 매달리는 이슬을
곡예사가 아니고선
다 털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의 살은 공처럼 부드럽다
곡예사는 이슬을 발가락 끝으로 통
통 퉁겨 보기도 하고
입으로 빨아들여 농구공처럼 톡
톡 내쏘기도 한다
작은 물방울들을 눈덩이처럼 굴려
크게 만들어 놓은 뒤
새총을 쏘듯이 거미줄을 당겼다 놓아
다시금 새하얀 구슬들로 쏟아지게도 한다

이슬을 다 걷은 거미는
괜시리 한번 거미줄을 튕겨 본다
오늘도 바람이 불면 그물망 한 가닥
기둥처럼 붙잡고 흔들릴 것이다
그뿐인가,
팽팽한 줄이 퍼덕이는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할 것이다

- 오봉옥,『노랑』(천년의시작, 20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