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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산] 아버지를 넘긴다/이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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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51회 작성일 2025-04-04 10:58: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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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넘긴다/이강산

벽에 걸린 사진 한 장
폭설에 파묻혀 저절로 흑백사진이 되어버린 식민지 사택
이사철마다 앨범과 수백 권의 책을 뒤져
십 년 만에 액자에 담았다
'올챙이 적 개구리를 꿈꾸던 집 -89, 12, 24'
인화지 뒷면에 그렇게 쓰여 있다
그 시절 로맨티스트 청년 하나가
천정 뚫고 쏟아지는 햇살 아래
슬픔의 채송화를 키우던 집
잃어버린 흑백사진 한 장이 더 있다
여든 다섯에 이르도록 개구리가 되어본 적 없는
장돌뱅이 톱장수 아버지
그 올챙이 아버지를 찾아
벌겋게 녹슨 기억의 책갈피를 넘긴다
아 아, 낡은 책갈피 따라 철벙철벙 넘어가는
올챙이의 무논들이여
아오지, 청진항, 관부연락선, 안면도, 춘천, 문의……
어딘가 묻혀 있을 아버지를 세상에 꺼내놓는 일이
아버지에게 갇혀 있는 나의 탈출이라도 되는 듯
그래야만 나도 개구리가 된다는 것처럼
5년전, 10년 전, 30년 전, 60년 전의
아버지를 넘긴다

​- 『물속의 발자국』(문학과경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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