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덜컹거리는 사과나무/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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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사과나무/안도현
사과나무에서 사과 꼭지를 따는 소리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소리
으앙, 하고 사과가 허공을 떼밀어내는 소리
처녀들이 사과를 받아서 두 손으로 닦은 뒤에
차곡차곡 궤짝에 담는다 사과가
코를 막고 한알씩 눈을 감았기 때문에
궤짝 속이 어두워진다
궤짝 바깥에는
둥근 잇몸 자국을 찍으며 처녀들이
사과를 한입 베어 무는 소리
사각사각 달이 환하게 뜨는 소리
그때 과수원으로 트럭이 오면
사과나무는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트럭 짐칸으로 사과 궤짝들이 서둘러 뛰어오르고
그 맨 꼭대기에는 달도 둥실, 걸터앉는다
사과나무는 양팔을 늘어뜨리고
괜찮지? 괜찮지? 하면서
또다른 사과나무의 옆구리를 찔러본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사과나무끼리
손끝이 닿지 않는다
트럭이 시동을 걸고 멀리 떠나기 전에
사과나무가 먼저 덜컹거린다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2004)
사과나무에서 사과 꼭지를 따는 소리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소리
으앙, 하고 사과가 허공을 떼밀어내는 소리
처녀들이 사과를 받아서 두 손으로 닦은 뒤에
차곡차곡 궤짝에 담는다 사과가
코를 막고 한알씩 눈을 감았기 때문에
궤짝 속이 어두워진다
궤짝 바깥에는
둥근 잇몸 자국을 찍으며 처녀들이
사과를 한입 베어 무는 소리
사각사각 달이 환하게 뜨는 소리
그때 과수원으로 트럭이 오면
사과나무는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트럭 짐칸으로 사과 궤짝들이 서둘러 뛰어오르고
그 맨 꼭대기에는 달도 둥실, 걸터앉는다
사과나무는 양팔을 늘어뜨리고
괜찮지? 괜찮지? 하면서
또다른 사과나무의 옆구리를 찔러본다
그러나 사과나무는 사과나무끼리
손끝이 닿지 않는다
트럭이 시동을 걸고 멀리 떠나기 전에
사과나무가 먼저 덜컹거린다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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