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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안개/윤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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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창민 조회 235회 작성일 2025-02-23 18:00: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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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윤성택

밤이 그치고 숲의 깊은 곳까지 서걱거리는 안개가 불빛을 들이마신다

구부정한 가로등이 알약 속으로 들어가
어둡고 투명한 병을 만나면
고통도 잠시 별이 될 수 있을까
 
아침은 불면(不眠) 밖이 만져져 까칠하다
 
메말라 갈수록 잎 하나에 더 집착하는 화분 앞에 섰을 때
모든 길은 내가 가보지 않은 날들에 가서 시든다
 
책장 안에서도 맨홀 안에서도
어느 바람 속에서도
이대로 끝나간다는 불안이 말라가는 동안
나에게만 전하기 위해
그때 그 잎이 창문을 떼어낸다
 
터널 같은 안개 속에서 무시로 미등이 다가와
충혈을 불리며 무게 없이 둥둥 떠다닐 때
죽은 우듬지 촉수에서 정전기가 이는 상상
 
잊혀진 폐가에서도 새벽엔 사람이 모인다
아직 사라지지 않는 안개에 묻혀 있는 낙엽들이
나무를 향해서 수액을 밀어 보냈을 뿐
 
그 살아 있는 순간을 위해 나는 아직 떠나지 못한다
알약 속에 켜져 있는 안개,
창틀에서 뻗어온 가장 시든 잎이 숨을 몰아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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